7장. 첫 번째 시도, 그리고 멈춤
한 달 반쯤 되었을 때였다.
재혁이 저녁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창가 자리에 촛불이 있었고, 와인이 나왔다. 재혁은 대화를 잘 이끌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식의 저녁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준혁과의 저녁 식사는 항상 집이었고,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고, 반찬 이야기가 전부였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하다는 게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린 것 같은, 낯설고 약간 두근거리는 느낌이었다.
재혁이 거실 조명을 낮추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응. 오랜만에 이런 저녁 먹어봤어.”
“원래 남편이랑은 이런 거 안 했어요?”
“준혁은 예약 같은 거 잘 안 해. 집에서 먹는 걸 좋아하거든.”
“그럼 많이 답답했겠다.”
재혁이 가까이 앉았다. 나는 와인이 아직 몸속에서 돌고 있었다. 재혁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재혁이 손을 뻗어 내 손 위에 살며시 얹었다. 나는 굳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준혁이 떠올랐다. 퇴근하고 들어오던 모습이었다.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러 가던, 그 익숙한 뒷모습. 아무 이유 없이 그게 떠올랐다.
나는 손을 천천히 빼며 말했다.
“미안해.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아.”
재혁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잡아두거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알겠어요. 부담 주려는 건 아니었는데.”
“알아.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그날 밤 나는 작은방에 누워 눈을 감지 못했다. 잘못된 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그날은 알려 하지 않았다.
민지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중에 웃으면서 털어놓았다.
“어느 날 내가 샤워하고 나왔는데 준혁 씨가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 나는 그냥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하고 방으로 들어갔어. 근데 문 닫고 나서 왜인지 모르게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그냥 잤지. 뭐 어떡해.”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8장. 두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재혁과 나 사이의 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저녁을 같이 먹고 설거지를 같이 하는 날이 늘었고, 소파에 앉을 때 팔이 닿아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서로의 컵에 물을 따라주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재혁도 존댓말을 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왔고, 나도 딱히 잡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됐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밤이었다. 재혁이 거실 불을 낮추고 빗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비 오는 날은 왠지 기분이 이상해져. 뭔가 솔직해지고 싶은 느낌.”
“나도 그래. 비 오는 날은 평소에 못 하는 말이 나오더라.”
“나한테 못 하는 말이 있어?”
나는 잠깐 재혁을 봤다.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있어. 근데 아직은 못 하겠어.”
재혁이 가까이 왔다. 이번에는 내가 피하지 않았다.
그날 밤은 조용했다. 격렬하지 않았다. 재혁은 서두르지 않았고, 말이 많았다. 괜찮아, 불편하면 말해, 라는 말을 몇 번씩 했다. 나는 그 말들이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준혁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 없이 함께하는 게 준혁의 방식이었다.
재혁은 달랐다. 무드가 있었다. 조명을 신경 쓰고, 분위기를 만들고, 상대가 어떤지를 말로 확인했다. 나는 그것이 낯설었지만, 낯선 만큼 설레기도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새벽에 눈을 떠서 천장을 보다가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좋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낯선 곳에서 낯선 온기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 무렵 민지와 전화를 했는데, 민지는 준혁과의 두 달을 이렇게 표현했다.
“준혁 씨는 진짜 아무 기대를 안 해.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안 와. 그게 처음에는 답답한 것 같았는데, 어느 날부터 그게 편해지기 시작하더라.”
“편해? 어떤 의미로?”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거야. 재혁이랑 살 때는 항상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 근데 준혁 씨는 내가 뭘 해도 그냥 있어. 그 조용함이 처음에는 냉담한 것 같더니, 나중에는 안전한 느낌이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오래 생각했다.
민지가 말을 이었다.
“어느 날 내가 먼저 손을 잡았어. 준혁 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냥 잡아도 돼, 가 끝이야.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어. 부드러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데, 그냥 단단한 느낌.”
“맞아. 원래 그래. 말이 없어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야.”
민지와 준혁 사이의 거리도 그렇게 천천히, 소리 없이 좁혀졌다. 재혁과 내가 분위기로 다가섰다면, 민지와 준혁은 고요함으로 가까워졌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서로가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