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의 온도 #5~6

5장. 이름을 부르기까지

첫 주가 지나고, 둘째 주가 되었다.

재혁은 나를 부를 때마다 멈칫했다. 처음 며칠은 그냥 야, 라고 불렀다. 그것도 어색하니까 이름으로 부르려다가 또 머뭇거렸다. 어느 날은 형수, 라고 불렀다가 본인이 더 놀라서 헛기침을 했다.

“미안해요. 입에서 그냥 나왔어.”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지수라고 해. 어색해도 그냥 해.”

재혁이 잠깐 나를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지수.”

처음으로 이름을 제대로 불렀을 때, 이상하게 귀가 약간 붉어지는 것 같았다. 준혁이 내 이름을 부르는 방식과 달랐다. 준혁은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다. 부를 일이 있으면 작은 목소리로 자기야, 라고 하거나 그냥 시선으로 대신했다. 재혁은 이름을 부를 때 눈을 먼저 맞췄다.

민지는 준혁에게 적응하는 데 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어느 날 전화로 하소연했다.

“준혁 씨라고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한 거야. 그렇다고 오빠라고 부를 수도 없고. 어느 날은 저기요, 라고 불렀더니 준혁이 그냥 민지야, 라고 하더라. 그 말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뭐가 어색해? 이름 부른 거잖아.”

“내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그냥 호칭을 정리한 거 같은 느낌이야. 아무 감정 없이 말하는 거 알잖아. 재혁이는 내 이름 부를 때 항상 좀 달콤하거든. 야, 민지야, 하는 식으로. 근데 준혁 씨는 민지야, 가 그냥 사전 발음 같아.”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뭔가를 생각했다. 준혁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민지는 그것이 낯설다는 것도.

세 번째 주, 재혁이 퇴근하면서 말했다.

“지수, 오늘 저녁에 나가서 먹을까요? 꼭 가고 싶었던 데가 있어서.”

이름과 제안이 동시에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그 자연스러움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6장. 가까워지는 거리

한 달이 지나면서 집 안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재혁은 서툰 게 없는 사람이었다. 분위기를 만드는 데 능했고, 상대가 어색하면 먼저 농담을 던져 긴장을 풀어줬다. 나는 그런 재혁 덕분에 낯선 집에 빠르게 적응했다.

어느 저녁, 재혁이 와인을 한 병 꺼내며 물었다.

“한 잔 할래요? 오늘 좀 마시고 싶어서.”

“좋아.”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와인을 마셨다. 텔레비전을 켜두었지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재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수는 원래 남편이랑 이렇게 앉아서 마시는 거 없었어요?”

“준혁은 술을 잘 안 마셔. 마셔도 혼자 조용히 마시는 스타일이야.”

“그럼 같이 마실 사람이 없었던 거네.”

“뭐, 그런 셈이지.”

재혁이 내 잔에 와인을 더 따라줬다. 손이 가까이 왔다. 나는 눈을 약간 내리깔았다.

그날 밤, 재혁이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문 앞에 잠깐 서서 말했다.

“지수, 작은방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요.”

“괜찮아. 나는 거기가 편해.”

하지만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동안 나는 잠깐 망설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재혁은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망설임이 무엇인지.

민지 쪽에서는 분위기가 달랐다. 준혁이 먼저 다가가는 일은 없었다. 다만 민지가 먼저 말을 건네면 짧게라도 대답했고, 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 늘었다. 어느 날 민지가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컵을 깼는데, 준혁이 말없이 빗자루를 들고 와서 유리 조각을 쓸어냈다. 다친 데 없어, 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민지는 그날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준혁 씨 진짜 말은 없는데 손은 빠르더라. 컵 깼더니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빗자루 들고 옴.”

“원래 그래. 말보다 몸이 먼저야.”

“신기하다. 재혁이는 다쳤어, 괜찮아, 막 그러는데 빗자루는 내가 가져와야 했거든.”

나는 그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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