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의 온도 #9~10

9장. 세 달의 고비 —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세 달이 지날 무렵, 친정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무릎이 예전부터 좋지 않으셨는데 서울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며칠 있다 가면 안 되겠니. 거리가 너무 멀어서 혼자 오기가 영 불편하더라.”

거절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재혁의 집에 올 수 없었다. 나는 준혁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니 때문에 잠깐 원래 집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준혁은 짧게 답했다.

“와도 돼.”

이틀 뒤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준혁은 어머니를 보자마자 짐을 받아 들었고, 방을 정리해뒀으며, 저녁으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청국장을 빼고 담백하게 끓인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첫 숟가락을 드시고는 조용히 웃으셨다.

준혁은 어머니 병원 예약을 직접 잡아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 의사 말을 노트에 옮겨 적어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알아듣기 쉽게 다시 설명해드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새롭게 보이는 그 낯섦.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아침, 나는 주방에서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옆에 오셔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지수야, 준혁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머니를 택시에 태워드리고 나서, 다시 짐을 쌌다. 재혁의 집으로 돌아가는 짐이었다.

준혁은 내가 가방을 끄는 걸 보더니 멈춰 서서 물었다.

“지금 가게?”

“응. 어머니도 가셨으니까.”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냥 나왔다.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코끝이 찡했다. 왜 그런 건지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10장. 여섯 달, 명절의 하루

반년이 지났다. 명절이 왔다.

우리는 명절 당일만큼은 원래 부부로 돌아가서 각자 시댁에 인사를 가기로 했었다. 준혁 시댁은 경기도 외곽이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오자 두 손을 잡으셨다.

준혁은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도왔다. 조카들이 달려들어 목을 타고 올라가도 끄떡없이 받아줬다. 시어머니가 거실에 앉아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셨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혁이 눈으로 물었다. 벌써 가냐는 눈빛이었다.

“먼저 가야 해. 저쪽도 가봐야 해서.”

그게 재혁 집이라는 걸 준혁은 알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잔뜩 싸 주셨다. 나는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택시를 잡았다.

명절 연휴 고속도로는 막혔다. 두 시간을 달려 재혁 집에 도착했을 때, 재혁은 작은 상자를 들고 나왔다.

“명절 선물이야. 마음에 들면 좋겠다.”

열어보니 귀걸이였다. 작고 단아한 것이었다. 예뻤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귀에 달았다. 재혁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싸 주신 음식 통이 가방 안에서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우면서, 나는 이상하게 된장찌개 냄새가 떠올랐다. 재혁 집에는 없는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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