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의 온도 #에필로그

에필로그 — 내가 몰랐던 것

고향에 내려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어머니 집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다. 낮에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고, 저녁에는 일찍 불을 끈다. 서울에서는 자정이 넘어야 잠이 왔는데, 여기서는 열 시만 넘어도 눈이 감긴다.

생각이 많은 밤에는 천장을 본다. 그리고 그 1년을 되짚는다.

나는 준혁이 만들어주는 삶의 바닥이 너무 단단해서, 그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바닥이 무너진 적이 없으니까 바닥이 있다는 걸 몰랐다. 전구를 갈고, 보일러를 미리 점검하고, 적금을 넣고, 마트에서 할인 코너를 확인하는 일들. 그것이 로맨스가 아니라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실은 그게 매일의 삶이었다.

나는 설레고 싶었다. 그 마음이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렘을 찾겠다고 삶의 기반을 걸어버린 건 너무 가벼운 선택이었다.

결혼은 교환해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은 언제든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부품이 아니었다. 감정은 시간이 쌓이면 굴러가기 시작하고, 정은 어느 순간 뿌리가 된다. 나는 그 뿌리를 흔들어놓고서 1년 후에 원상복구를 바랐다.

한 번 흔든 것은 다시 예전처럼 서지 않는다.

동창회에서 봤던 민지의 눈빛이 가끔 떠오른다. 그 가득 찬 눈빛.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그 감정의 이름을, 나는 이제 안다. 그건 만족이었다. 넘치거나 불안하지 않은, 조용하고 단단한 만족.

나는 언젠가 그 눈빛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직은 모르겠다.

고향의 아침은 조용하다.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리며 밥 먹으라고 하신다. 나는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오늘도, 그냥 살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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