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의 온도 #1~2

― 돌아올 수 없는 줄 몰랐던 자리에 대하여 ―

1장. 세상 둘도 없는 절친

사람에게는 딱 한 명,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웃지 않아도 기분을 읽고, 술잔을 내밀지 않아도 마음이 비어 있다는 걸 눈치채는 사람. 나에게 그 사람은 민지였다.

처음 만난 건 스물두 살 봄이었다. 대학교 도서관 앞 낡은 벤치, 나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고 민지는 캔커피를 손에 들고 지나가다 아무 말 없이 옆자리에 앉았다. 서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십 분쯤 나란히 앉아 있다가, 동시에 일어나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십삼 년이 흘렀다. 우리는 졸업 후 입사 면접을 함께 준비했고, 취업 실패에 함께 울었고, 서로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들어줬다. 주변에서는 우리를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고 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우리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나는 설렘을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귀던 시절, 남자친구가 기념일 아침에 현관 앞에 작은 꽃다발을 놓아두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출근길에 갑자기 문자 한 통, 오늘 저녁 야경 보러 가자는 말 한마디에 피곤함이 날아갔다. 남자친구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면 그걸로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민지는 달랐다. 통장 잔고가 예상보다 더 많이 남아 있을 때 안도의 숨을 내쉬고, 남자친구가 늦은 밤 고장 난 자전거를 말없이 고쳐줄 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화려함보다 조용한 안정. 이벤트보다 꾸준함. 민지가 연애에서 원하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자신과 정반대인 남자를 만났고, 결국 그 남자들과 결혼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거기서부터 이미 어긋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2장. 각자의 남편

내 남편 준혁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았고, 퇴근 시간이 크게 달라지는 일도 없었고, 약속한 날짜에 청구서를 꼬박꼬박 납부했다. 그는 나에게 오늘 어땠어, 라고 먼저 묻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일에는 마트에서 장미 몇 송이를 사 왔는데, 꽃집 포장도 아닌 비닐 그대로였다. 나는 그걸 받을 때마다 어딘가 허전했다.

그가 로맨틱하지 않다는 건 결혼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 신혼여행지에서 그는 여행 가이드북을 미리 인쇄해 왔고, 동선을 분 단위로 짜 두었다. 나는 그게 처음에는 웃겼다. 나중에는 피곤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는 손이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변기가 막히면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도 공구를 꺼내 들었고, 겨울이 오기 전에 보일러 상태를 미리 점검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현관 자물쇠 배터리를 갈아뒀다. 무언가를 고치고 나면 생색을 내는 법이 없었다. 그냥 다음 날 아침이 오면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민지의 남편 재혁은 내가 봐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빛이 달랐다. 말끝에 여운이 있었고, 자리에 앉기 전에 의자를 먼저 당겨줬고, 헤어질 때 항상 먼저 연락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모임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는 분위기를 쥐고 흔들었다.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면 한 마디로 붙잡았고, 웃음이 끊길 것 같으면 어느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런 재혁을 볼 때마다, 우리 준혁이랑은 참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겉으로 보는 것과 민지가 안에서 겪는 것은 달랐다. 민지는 한참 뒤에야 내게 말했다. 재혁의 로맨스는 항상 다음 달 카드값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꽃다발은 할부였고, 호텔 조식 이벤트는 사채였고, 명품 가방 선물은 신용대출이었다. 통장은 늘 비어 있었다. 재혁은 카드 게임을 즐겼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가볍게 즐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판돈이 커졌고 밤새 나간 날이 잦아졌다.

민지는 그 사실을 알고도 한동안 모른 척했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겉에서 보면 세상 다정한 남자야. 근데 그 다정함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안에 들어와야 알아.”

우리는 서로의 남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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